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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TV Program Review

이수영 사기 털어놓다

by 천오션 2019.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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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수영이 결혼 전 사기를 당한 사실을 털어놨다.
 
18일 방송된 SBS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에서는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가수 이수영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이수영은 "9집 후 10집을 못 내고 시집을 갔다"며 "9집 '내 이름 부르지마' 이후 아무도 제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을 평정했던 오리엔탈 발라드의 여왕인 대한민국의 가수. 본명은 이지연.

1999년 11월 1집 <I Believe>로 데뷔했다. 2003년에 초고공비행 중이던 이효리를 꺾으며 MBC 10대 가수 가요제의 대상격인 최고 인기 가수상을 수상하고 이듬해에는 MBC 10대 가수 가요제 2연속 수상과 더불어 2004년(휠릴리) 골든디스크 대상까지 거머쥐었다. 2016년 7월 현재까지 9장의 정규 앨범, 2장의 싱글을 발표했으며, 대표곡으로 <I Believe>, <그리고 사랑해>, <라라라>, <Grace>, <덩그러니>, <휠릴리>, <단발머리> 등이 있다.

데뷔 이후 소속사가 3번 바뀌었다. 맨 처음 소속사는 팬텀, 그 다음은 리쿠드이다. 두 번 다 소속사와의 마찰로 생긴 일인데 아무래도 돈 문제인 듯. 한때 이수영의 고모가 직접 회사를 차리기도 했으나(have Ent) 다시 티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가, 2013년 9월 이후 블루프린트 뮤직 소속이다.

가수로서의 꿈은 '20주년 디너 쇼'라고 하며 팬들 역시 디너쇼를 상당히 고대하고 있다. 2019년부로 데뷔 20년차가 되었다.
 
MC 김구라가 "남편이 활동하라는 이야기 안 하냐"고 묻자 그는 "사실 시집가기 전에 사기를 당해서 남편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답했다.

그녀의 솔직한 대답에 김구라는 "내가 괜한 질문을 했다. 미안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결혼 후 한 달 만에 임신했다"며 "아기 낳아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신이 없다"고 덧붙이며 10년 동안 활동이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그는 지난 2017년 8월에 방송된 MBC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비디오스타'에 출연해 "과거 사기를 당해 남편에게 억 단위의 빚을 고백했고 남편이 연락이 와 '많은 고민이 됐지만 잘 견뎌 보자'고 해 결혼하게 됐다"고 고백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또한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거의 다 커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압도적으로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자주 언급했다. 한창 어머니 일이 언급될 당시 일각에서는 '엄마 팔아먹는다'는 식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애초에 이수영 본인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없는데 PC통신을 중심으로 지인들이 이 사실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후 소속사가 언플로 이 사실을 활용해 '소녀가장 가수'라고 알려졌던 것. 상술한 남동생 방송공개도 이 때의 사건이다. 그러나 이수영은 데뷔 때 이미 21세 성인이었으며, 나중에는 "부모님을 두 번 죽이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확실히 소녀가장 이미지로 동정심이 상술로 이어진 느낌이 강했단 기억을 가진 의견들도 있다. 소속사나 가수나 말은 그렇지만 상술로 쓸 수 있으니.

이수영 부모는 경상도 남해 출신이라고 한다. 여동생 한 명 남동생 한 명이 있는데 남동생은 86년생으로 분당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고등학교를 중퇴했다고 한다.

또한 의외로 한국에서 저평가받는 가수로 평가된다. 앨범 발매마다 전문가들은 호평을 보냈지만 그만큼의 인기는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솔로 여가수가 정규 9집까지 발매하며 활동한 사례가 적기 때문에 대중적으로나 앨범퀄리티의 밸런스를 잘 잡아내는 가수로 평가되기도 한다.

노래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예전에 비해 활동량과 인지도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를 꼽을 때 바로 이름이 나올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이수영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노래 잘 하지' 정도의 평가는 듣는다.

데뷔 전에는 흑인음악을 즐겨 들었고 음역대가 높고 성량이 큰 진성 창법을 사용했으나, 이 창법은 1집 이후로 봉인. 이유는 당시 소속사와 본인만 안다.

2집부터 가성 창법을 연마하기 시작했는데 음반 발매 순서대로 들어보면 음역 폭은 다소 좁아지더라도 점차 안정적이고 듣기 편한 목소리로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때 과도한 스케줄을 사고 한 번 없이 소화하기도 했으나 건강 체질도 아니고오히려 고랑80년 타입 라이브도 컨디션에 따른 기복이 심하다.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변해왔고 또 변해가고 있는 가수로, 결혼-출산-육아로 이어진 공백기 이후에는 고음역대에서 좀 더 힘이 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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